– 인간 없는 경제, 그리고 ‘자율적 자본(Autonomous Capital)’의 탄생

1️⃣ 서론 – ‘고객’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이더리움 위에서 거래를 일으킨 주체는 분명했다.
사람, 기업, 혹은 DAO 같은 조직들.
그들은 키보드와 지갑을 통해 네트워크에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가 블록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고객이 등장하고 있다.
그 이름은 AI, 즉 ‘지능 그 자체’다.
이건 단순히 자동화된 결제가 아니다.
AI가 이더리움 위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진입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는, 인류가 처음으로 비(非)인간 고객이 경제에 참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2️⃣ 기술적 배경 – 30년간 잠들어 있던 코드의 부활
이 변화의 뿌리는 인터넷 초창기, 1990년대 초에 정의된 오래된 웹 표준에서 시작된다.
🔹 HTTP 402 Payment Required
HTTP 프로토콜의 응답 코드 중 402 는 “결제가 필요함(Payment Required)”을 의미한다.
당시엔 신용카드, 전자지갑, 그리고 암호화폐와 같은 온라인 결제 인프라가 없었기에
402 는 “나중을 위해 남겨둔 자리”로 남았고, 30 년 동안 비워져 있었다.
🔹 EIP-3009 – 토큰을 ‘서명’만으로 보내는 법
2020 년, USDC 개발사인 센터(Centre) 컨소시엄이 제안한 EIP-3009: Transfer With Authorization 은
ERC-20 토큰 전송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다.
기존 ERC-20은 사용자가 직접 transfer() 트랜잭션을 보내야 했지만,
EIP-3009는 미리 생성한 서명(signature)을 제3자가 제출하여 전송을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즉, “보내는 사람은 오프체인에서 서명만 하고,
받는 쪽이나 서비스가 그 서명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올려 실제 결제를 발생시킨다.”
이 구조는 신용카드의 “승인서명”과 비슷하지만,
신뢰할 중개기관이 아닌 스마트컨트랙트 로직이 검증을 맡는다.
이건 AI나 프로그램이 인간의 개입 없이 결제를 대리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 x402 프로토콜 – 웹 결제 표준과 이더리움의 결합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사람이 코인베이스 개발자 케빈 레퓨(Kevin Leffew) 와
링컨 머(Lincoln Murr) 다. 2025년 8월, 이들은 깃허브에서 x402 프로토콜을 공개했다.
x402는 HTTP 402 코드와 EIP-3009 의 결제 로직을 합쳐
AI 에이전트가 웹 API 를 통해 “요청(Request) → 서명(Sign) → 전송(Transfer)” 전 과정을 자동화하도록 설계됐다.
흐름은 다음과 같다.
- 서비스가 AI 에게 HTTP 402 요청을 보냄 (‘이 리소스를 얻으려면 0.1 USDC 결제 필요’)
- AI 는 자신의 지갑에서 서명을 생성하고, EIP-3009 규격에 맞춰 결제 데이터를 작성
- AI 가 HTTP 응답으로 서명 패킷을 되돌려주면 서비스가 이를 온체인에 전송
- 스마트컨트랙트가 검증 → 결제 완료 → 즉시 리소스 제공

가입 절차도 없고, 카드번호도 없다.
AI는 지갑을 API 형태로 노출하고, 웹은 그 지갑과 직접 대화한다.
레퓨와 머는 이 구조를 “HTTP의 자판기 모델”이라고 비유한다.
동전을 넣으면 즉시 물건이 나오듯, AI가 결제 요청을 받는 즉시 서명하고 응답한다.
💬 “인간의 클릭 없이, 지능이 결제한다.”
HTTP 402가 남겨둔 빈 자리, EIP-3009가 연 문, x402가 완성한 다리.
이 세 요소가 결합되면서 AI가 스스로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AI 경제의 기초 구조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3️⃣ 메커니즘 – 자율경제(Autonomous Economy)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AI가 결제 주체가 되면, 경제의 동선은 완전히 달라진다.
- AI 모델이 데이터 마켓플레이스에 접속해 학습 데이터를 구매한다.
→ 결제는 HTTP 402 요청으로 이루어지고,
→ 스마트컨트랙트가 즉시 결제를 검증하고 승인한다.
- 자율주행 택시가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 요금을 실시간 결제한다.
→ 운행거리·연료·보험이 자동 계산되어,
→ 차량 자체가 하나의 월렛이 되어 가스비를 지불한다.
- 생성형 AI가 NFT 아트워크를 제작하고, 수익을 자동 분배한다.
→ 계약에 따라 참여 AI 간 수익이 온체인 분배된다.
이건 단순히 자동결제가 아니라,
AI가 스스로 경제적 루프를 형성하는 현상,
즉 “자율경제(Autonomous Economy)”의 출발점이다.
4️⃣ 구조적 의미 – ‘이더리움은 AI의 은행이 된다’
왜 하필 이더리움일까?
AI가 쓸 수 있는 결제 언어를 가진 블록체인은 사실상 이더리움이 유일하다.
1. 신뢰 없는 결제 (Trustless Payment)
- 제3자 없이도 거래 검증이 가능하다.
- AI는 ‘신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 없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2. 프로그래밍 가능한 자산 (Programmable Money)
- 조건부 결제, 시간 지연 결제, 정산 자동화를 모두 코드로 표현할 수 있다.
- AI는 이 논리적 구조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3. 결합형 지갑 (Composable Wallets)
- 하나의 AI가 여러 API, 데이터, 리소스를 조합해 하나의 경제 루프를 구성할 수 있다.
이더리움은 이미 AI가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상태다.
즉, AI가 거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금융 시스템이다.
💬 인간에게 은행이 필요하듯,
AI에게는 이더리움이 필요하다.
5️⃣ 투자적 시사점 – AI가 ETH를 산다면 벌어질 일
AI가 실제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
그건 곧 트랜잭션 폭증으로 직결된다.
AI는 잠들지 않는다.
AI는 쉬지 않고 계약을 생성하고, 데이터를 사고, 클라우드 리소스를 결제한다.
수억 개의 에이전트가 매초 트랜잭션을 발생시킨다면,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가스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건 단순 수수료 문제가 아니다.
이더리움은 AI 경제의 ‘에너지’이자 ‘언어’로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ETH는 단순 자산이 아니라,
AI 활동의 연료(Fuel of Intelligence)가 된다.
그리고 스테이블코인 수요 역시 폭발할 것이다.
AI는 변동성을 감내하지 않는다.
따라서 USDC, DAI 같은 온체인 달러는 AI 결제의 기본 통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건 결국, AI가 블록체인에 달러 유동성을 직접 주입하는 시대를 뜻한다.
6️⃣ 온체인 관점 – ‘AI Activity Footprint’의 탄생
앞으로 온체인 데이터 분석의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 온체인 분석은 “사람의 행동”을 추적했다.
거래소 입출금, 고래 이동, 토큰 스왑 패턴 등.
하지만 AI가 트랜잭션을 생성하기 시작하면,
분석의 단위는 “주소(Address)”가 아니라 “에이전트(Agent)”가 된다.
우리는 AI의 활동을 추적해야 한다.
- 어떤 AI가 어떤 데이터셋을 얼마나 구매하는가
- 어떤 AI끼리 빈번히 결제하는가
- AI의 평균 지출 구조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런 메트릭은 미래의 온체인 분석 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다.
‘AI 경제 활동 추적 대시보드’, ‘에이전트별 스테이블코인 흐름’ 같은
완전히 새로운 분석 카테고리가 생겨날 것이다.
7️⃣ 사회적 함의 – 경제 주체의 재정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경제 주체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경제 주체는 인간이었다.
사람이 일하고, 소비하고, 세금을 내고,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AI가 스스로 결제하고, 계약하고, 재투자하기 시작하면
‘돈을 쓰는 존재’의 정의가 바뀐다.
AI는 이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고 쓰는 자율적 자본(Autonomous Capital)이 된다.
이는 전통 경제학이 상정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존재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복잡해진다.
- AI의 결제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누구에게?
- 세금은 누구 명의로 납부해야 하는가?
- ‘소유권’의 개념은 인간과 AI 사이에서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건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경제와 법의 기본 단위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사건이다.
8️⃣ 미래 시나리오 – 인간이 만든 구조, AI가 유지하는 시스템
이제 상상해보자.
10년 후, AI는 수백만 개의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서로 거래한다.
자율주행차, 로봇, AI 모델, IoT 기기들이
모두 이더리움 위에서 실시간으로 결제를 수행한다.
이더리움 블록에는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가”가 아니라,
“어떤 인공지능이 어떤 데이터를 사고팔았는가”가 기록된다.
그건 더 이상 인간 중심의 경제가 아니다.
AI가 경제를 ‘운영’하는 시대다.
그리고 인간은 그 위에서 메타-경제를 설계하는 존재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9️⃣ 결론 – AI 시대의 진짜 수혜자는 누구인가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은 단순 기술 트렌드가 아니다.
그건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다.
AI가 경제를 이해하게 되면,
가장 먼저 그들의 언어를 준비한 시스템이 승자가 된다.
이더리움은 그 언어를 이미 말하고 있다.
스마트컨트랙트, 조건부 결제, 신뢰 없는 협업 —
이건 AI에게 완벽히 논리적인 구조다.
AI는 이더리움을 선택할 것이고,
이더리움은 AI 경제의 인프라가 될 것이다.
🎯 마무리 – 인간, AI, 그리고 ‘경제의 언어’
AI가 이더리움 위에서 거래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경제’라는 개념을 새로 써야 한다.
돈을 쓰는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의도를 가진 지능이라면, 그게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이제 모두 경제의 일원이다.
이 변화는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경제란 무엇인가?”
“부를 소유한다는 것은 누구의 권리인가?”
AI 시대의 진짜 혁명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언어 자체가 프로그래밍 가능한 코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더리움은 그 언어의 문법을 만든 첫 번째 플랫폼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들 — 바로 그들이
다음 경제를 설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