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돈이 바뀌고 있다
여러분은 가장 최근, 종이돈, 즉 현금을 사용한 게 언제인가요?
아마 쉽게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엔 신용카드마저도 조금 구식처럼 느껴집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애플페이, 삼성페이 등으로 즉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지갑을 꺼내거나 카드를 긁는 과정 없이도 결제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디지털 결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결제 방식만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
이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 즉 ‘화폐 시스템’ 자체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국가들은 왜 서로 앞다투며 디지털 화폐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요?
화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교환 수단만이 아닙니다.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기도 하죠.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전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달러가 가진 절대적 지위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물론, 민간 기업, 심지어 각종 SNS 플랫폼까지 모두 화폐의 미래를 놓고 치열한 충돌을 벌이고 있습니다.
즉, 지금 전 세계는 조용하지만 치열한 전쟁 중입니다.
바로 ‘디지털 화폐 전쟁’입니다.
2. 세 개의 전선
지금 디지털 화폐 전쟁은 세 가지 주요 형태로 경쟁 구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CBDC,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입니다.
먼저 CBDC는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정부의 디지털 화폐로서,
중국과 한국,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개발 중입니다.
단순히 디지털로 돈을 바꾸는 것을 넘어, 국가가 화폐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통제하고
경제 정책을 정교하게 실행할 수 있는 통치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죠.
게다가 국제적인 긴장 상황에서는 금융제재와 같은 지정학적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어 그 파급력이 막대합니다.
두 번째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테더의 USDT, 서클의 USDC과 같은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디지털 달러 역할을 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정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달러를 더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암호화폐는 CBDC나 스테이블코인과 전혀 다른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국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거부하는 ‘탈중앙화된 디지털 자산’입니다.
이들은 정부의 검열이나 금융제재가 불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며,
전 세계 어디서나 가치가 인정받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비트코인은 ‘국가를 초월한 디지털 금’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위기와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안전자산으로 떠오르고 있죠.
3.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적 영향
지정학적 긴장도 디지털 화폐 경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무역, 기술, 안보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양국은 금융 시스템 주도권 경쟁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결제망에서의 배제(SWIFT 퇴출) 등
디지털 금융 제재의 실질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 역시 에너지 안보와 함께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죠.
이러한 글로벌 불안정 속에서 각국은 자국 금융 주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 화폐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4. 브릭스: 반(反)달러 동맹의 반격
2024년 10월 22일, 러시아의 카잔.
이름조차 낯선 이 도시에 중국, 러시아, 인도, 남아공을 포함한 35개국과 유엔 등 6개 국제기구 대표단이 조용히 집결했습니다.
겉으로는 정치·안보, 무역·투자, 문화·인도주의라는 범세계적 의제가 논의됐지만, 회의의 진짜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 물밑에서는 글로벌 금융 질서의 판을 바꾸기 위한 조용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달러 중심의 국제 결제 체제에 균열을 내고, 브릭스 중심의 새로운 디지털 화폐 결제망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구상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브릭스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경제 협력체가 아닙니다.
신흥국 중심의 금융 연합체로 탈바꿈하며,
미국 달러를 정조준한 금융 주권 회복, 그리고 자체 결제 시스템을 통한 새로운 질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프로젝트가 바로 ‘브릭스페이(BRICS Pay)’.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비달러 결제망 구축 구상이며, 이는 단순한 개념 수준이 아닌 실행 단계로 진입 중입니다.
여기에 더해, ‘비트코인 + 금’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통화 모델도 내부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특히 금 보유량이 풍부한 러시아, 중국, 이란은 이 구도에서 중심축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미 국가 차원에서 비트코인 채굴을 합법화하고, 이를 무역 자산으로 활용하는 체계를 현실화하고 있으며,
브라질과 남아공도 각각 암호화폐를 전략 자산으로 편입하는 국가 계획을 추진하고 있죠.
이제 브릭스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달러 패권을 흔들고 있습니다.
미국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이 공동 통화를 추진할 경우,
100% 관세 부과라는 초강수를 경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브릭스의 디지털 화폐 전략이 국제 무역과 금융 질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5. 중국: 디지털 화폐를 외교 무기로
그리고 디지털 화폐 전쟁에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가 직접 발행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 CBDC를 실제로 도입한 나라입니다.
이미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외국인 선수와 관람객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성을 시험했고,
이후에는 일부 지역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등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중국은 이 디지털 위안화를 자국 내부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디지털 일대일로(Digital Belt and Road)’ 전략입니다.
과거에는 도로, 철도, 항만 등의 인프라를 다른 국가에 수출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금융 인프라까지 수출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자국 디지털 화폐의 사용 범위를 국제적으로 확장하고,
장기적으로는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CBDC를 전략적 무기로 적극 활용하는 한편,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오히려 금지하는 상반된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홍콩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암호화폐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부는 통제하고, 외부는 유인하는 이 이중 전략은,
중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통화 주권과 글로벌 금융 영향력을 계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6. 미국: 달러 스테이블 코인를 전세계 기축통화로
미국은 중국과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는 두 나라 모두 같습니다.
다가오는 디지털 통화 시대의 패권을 쥐는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중 “미국을 전 세계 크립토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발언으로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단순한 선거용 수사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흔들리고 있는 달러 패권을 디지털 자산을 통해 되살리겠다는 전략적 계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CBDC를 무기화하는 흐름을 경계하면서,
정반대의 방식, 즉 민간 주도의 디지털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 그는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준비금에 포함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달러 패권 회복 시나리오의 일부입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기축통화국으로 국가 부채라는 근본적 취약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은 그 취약한 고리를 조금씩 건드려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도구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도구가 역으로 미국이 지닌 구조적 약점을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닙니다.
디지털로 포장된 ‘달러’ 그 자체, 즉 새로운 형태의 통화 무기입니다.
이제 미국은 이러한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국가 차원의 경제 전략 도구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달러가 국제 금융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것과 동일한 논리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블록체인이라는 비가역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훨씬 더 깊고, 빠르며, 통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7. 조용한 개입자, 유럽의 속내
유럽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는 암호화폐에 대해 엄격한 규제 기조를 유지하며,
마치 통제를 강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소극적인 태도는 아닙니다.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나 디지털 위안화가 유럽 금융 생태계에 침투하는 것을 그대로 두는 일을 결코 두고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Digital Euro)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명분은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을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유럽의 통화 독립성과 글로벌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략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유럽은 암호화폐와 외부 디지털 통화의 흐름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만의 디지털 화폐 무장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 역시 이 거대한 디지털 패권 전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8. 한국의 뒤 늦은 대응
한국은 주요국들보다 다소 늦은 시점인 2025년 하반기,
국민 10만 명을 대상으로 CBDC 시범 운영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정치적 혼란이 채 수습되지 않은 가운데서도 이 중대한 결정을 밀어붙인 이유는 단 하나,
국가 통화 주권을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방화벽의 구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은 디지털 화폐를 앞세워
국경을 넘어 금융 주도권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행동이 늦어진다는 것은 곧, 타국의 디지털 통화가 우리 경제 안으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됩니다.
바로 그렇기에, 불완전한 준비 속에서도 강행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합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통화 주도권 경쟁에서 한 발 뒤처진 자리에 서 있으며, 그 성공 여부조차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통화 주권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릴 것인가.
CBDC를 둘러싼 이 싸움은, 그 본질에 있어 국가 생존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요
조용한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전장은 디지털 화폐이고, 전투는 블록체인 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달러 패권에 맞서는 가장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반격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달러를 앞세운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일까요?
국가 통제를 무기로 내세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일까요?
아니면 실물 자산, 특히 금 기반의 RWA(Real World Asset) 토큰이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게 될까요?
지금 이 경쟁의 향방을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격돌은 단지 금융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리적인 충돌조차 배제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위험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화폐는 지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블록체인’이라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기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 되고 있습니다.
그 위에서 수많은 디지털 화폐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화폐는 가치를 저장하는 금고처럼,
어떤 화폐는 즉각적인 교환을 위한 디지털 바터 시스템으로,
또 어떤 화폐는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연료, 즉 ‘가스’처럼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단지 유행을 따르거나,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생활형 화폐도 등장할 것입니다.
이처럼 화폐는 이제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목적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유기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양성 속에서, 무엇이 ‘주류’가 되고, 무엇이 ‘사라질 운명’이 될지는 결국 누가 이 디지털 패권 전쟁의 흐름을 주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화폐를 둘러싼 거대한 패권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금융의 미래, 나아가 세계 질서 그 자체를 재편하려는 거대한 충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며,
준비하지 않은 대가는, 그 어떤 비용보다 클 수 있습니다.
결국 답은 하나입니다.
이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흐름을 읽고, 전략을 세우는 것.
그것만이,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생존하고 주도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